우리나라 게임계의 보물 "손노리"

게임을 전공하는 학생은 아니지만 한때 게임산업에 종사하겠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컴퓨터가 아주 후졌음에도 불구하고 PC파워니 PC PLAYER, 게임피아 같은 잡지를 달달이 구입하곤 했었다.
당시에는 하드웨어의 발전속도가 엄청나서 (정말 엄청났었다 1년 새에 CPU클럭이 2배 가까이 올라갔으니;;)

컴퓨터를 처음 접했던 93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게임들이 내 손과 눈을 거쳐갔다.
특히 96년부터 99년은 정말 엄청난 양의 게임이 발매되었고 수많은 명작들도 그 사이에 태어났다.

이때 나를 사로잡은 게임은 단 하나. "포가튼사가"였다. 놀랄만한 자유도와 풍부한 이벤트, 유머들은 많은 버그와 상대적으로 조악한 그래픽들에도 불구하고 포가튼 사가를 당대 최고의 게임으로 군림하게 했다. 나 역시 이러한 포가튼사가만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손노리" 라는 제작사에게 관심을 갖게되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포가튼사가>



손노리는 이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로 대한민국 게임계에서는 알아주는 제작사였다.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는 특별한 어떤 것에 붙는 특별한 것들인데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이 범상치 않은 수식어를 동시에 거느리고 있었다. 한국 최초의 RPG로 탄생했고,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공히 최고의 게임이 된것이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제작 당시에는 동호인 제작의 형태가 두드러졌던것이 이후 "다크사이드 스토리"와 "포가튼 사가"를 거치며
회사의 형태를 갖추어 나갔고 이후 강철제국, 화이트 데이, 악튜러스 등 발표하는 게임마다 크나큰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을 끝으로 패키지 게임의 제작을 중단, 이후로 암흑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손노리 최후의 패키지 게임, 어스토니시아스토리 R>



패키지사업의 종료는 다른 게임업체들의 이유와 다르지 않다. 불법복제로 인한 수익성의 문제이다. 화이트데이나 악튜러스의 경우에는 넘쳐나는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와레즈"때문에 "팬은 있으나 구매자는 없는" 요상한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나 시기가 대기업도 나자빠졌던 IMF이후였으므로 그 타격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차라리 게임성으로 인해 경영상의 어려움이 도래했다면야 자연스레 여겼을테지만, 그 재미는 인정받은 상황에서 제작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면 당사자들이 받은 상처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본다면 인터넷의 보급이 손노리를 위시한 패키지 왕국의 종말을 부추겼다. 와레즈도 인터넷관련 법제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용량도 너끈히 내려받을 수 있는 초고속인터넷의 보급때문에 생겨났다고 해도 무방하고, 실제로 PC통신 시절에는 요금과 속도 / 시간의 문제로 이러한 불법배포가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또 리니지를 필두로한 온라인 게임의 보급이 패키지라는 닫힌 형태의 게임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첨병역할을 했기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손노리가 이러한 변화에 유기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손노리의 게임철학자체가 온라인에 부합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온라인 게임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게임 자체가 스토리텔링에 의지하기 보다는 시스템적인 측면 즉, 레벨업이나 아이템 같은 게임 부수적인 요소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면 패키지는 책을 읽어내려가듯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진행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장르라도 이러한 부분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손노리는 이러한 스토리텔링과 이야기 본질적인 재미에 충실했고 강했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원하는 유저들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변변찮은 실적으로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손노리는 사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하나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가지 플랫폼 (PSP, GP32, 모바일 등) 으로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지만 신작은 없고 "우려먹기"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야심차게 내놓았던 몇몇 온라인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팡야나 몇몇 성공했던 게임들도 핵심스탭들이 분가해 저작권을 가지고 떠나면서 실로 참담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조만간 NDS로 신작이 출시되고 PSP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2가 발매된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영광을 함께 누렸던 사람으로서는 꽤나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개발자들의 고충을 대변한 캐릭터 패스맨, 포가튼사가 (좌), 악튜러스(우)>



이상이 손노리의 과거와 현실이다. 불법복제때문에 머리가 커진 패스맨이나 손노리군 같은 캐릭터를 더 이상 볼 수 없을까. 나는 손노리를 우리나라 게임계의 보물이라 생각한다. 진심이다. 우리나라 게임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그들의 역량을 보더라도 그렇고, 그들의 서비스 정신과 선구자적 기질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들의 게임은 유저들과 소통하려 노력했다. 패스맨이 그러하고 포가튼사가의 제작에 쏟아부은 2년의 기간도 그러하다. 어스토니시아나 포가튼사가를 플레이해보면 그들이 게임만드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 많은 패러디와 오마주가 가득하고 어이없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만들어낸 모든 게임들은 한국이라는 척박한 토양에서 나올수 없는 열매들이다. 어스토니시아의 탄탄한 스토리가 그것을 반증하고 포가튼 사가의 자유로움이 증명한다. 비록 유저들로부터 상처입은 그들이라 할지라도. 생계가 중요한, 먹고사는 일이 바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자유분방함과 재능을 다시 유저들에게 보여 주었으면 한다.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 사족을 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온라인도 좋지만 콘솔게임에 주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콘솔도 PC만큼이나 많은 보급이 이루어져있고, 손노리의 역량을 펼쳐보이기에는 이보다 좋은 무대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PSP나 NDS같은 기종에 이미 진출했으니 그 터에서 맘껏 나래를 펼처보았으면 한다.

<PSP 어스토니시아스토리 2 프로모션 영상>




* 이미지 파일들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구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할 듯 해서 출저는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by 스카이라인 | 2008/05/26 21:44 | All about It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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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데카 at 2008/06/02 02:05
정정이요~
어스토니시아 PSP판은 손노리모바일 부문쪽이었던 '아이언노스'와
'엔트리브'에서 GXG판을 기반으로 제작하는 것 입니다.
Commented by 스카이라인 at 2008/06/02 12:21
저도 포스트 쓸때 이미 해당부분에 있어 확인을 했습니다만 제작의 주체가 어디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거 같아 일단은 손노리로 표기해 두었고, (사실 어떤 형태로 제작분업 및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확인이 쉽지 않더군요) 손노리 홈페이지 상에도 어스토니시아 PSP판에 관한 언급이 있기에 손노리라 표기하는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적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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